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雁)과 오리 압(鴨)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렀으나,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고,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지는 내용으로 보아 이곳이 신라시대 때 ”월지”라고 불린 장소로 확인되어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월정교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63-1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교량(橋梁)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되어 없어진 것을 고증을 거쳐 2018년 4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9년(760년)에 지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
1984년 11월 26일부터 1986년 9월 8일까지 진행된 두 번의 복원 설계를 위한 자료수집과 발굴조사를 통해 나무로 된 다리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였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공사로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의 교량 복원이 완료되었다. 2016년 4월부터 시작된 다리 양 끝의 문루(門樓) 2개 동을 건립하는 공사를 진행하여 2018년 4월 준공되었다.
경주 첨성대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첨성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 불국사
『구름을 마시고 토한다』는 토함산(745m)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은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핵심으로 신라 법흥왕 15년에 그 어머니 뜻에 따라 나라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 후 신라 경덕왕 10년(751) 때 재상 김대성이 다시 지어 절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건물은 물론 값진 보물들이 거의 불에 타거나 약탈되었다. 1920년 이전에는 일부 건물과 탑만이 퇴락한 채 남아 있었으나, 지속적인 원형복구 및 보수로 국보 7점을 간직한 오늘날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불국사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약 3km (포장도로 석굴로는 9km)정도 올라가면 동양 제일의 걸작으로 알려진 여래좌상의 본존불이 동해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유명한 석굴암이 있다. 불국사.석굴암은 1995년 12월 6일 해인사 장경판전과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어 국제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경주 보문관광단지
도시 전체가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큼 신라 천년의 영화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경주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인 역사도시로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과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이다.
경주 보문 단지는 경주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약 10여㎞ 정도 떨어진 명활산 옛 성터에 보문호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보문관광단지는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고 도로, 전기, 통신,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이 완비되어 있으며, 컨벤션시티로의 육성, 보문관광단지와 연계한 감포 관광단지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등 국제적 수준의 종합관광 휴양 단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