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사
고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이다.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는 고운사(高雲寺)라 하였으나 200여 년 뒤, 고운(孤雲) 최치원이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후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라 하였다. 헌강왕 때에 도선(道詵)이 약사여래불과 석탑을 건립하였다.고려 시대인 948년(정종 3) 고려의 운주조통(雲住照通)이 사찰을 중창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천우(天祐)가 다시 중창하였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
금성산 고분군은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소재하며 200여기에 이르는데 출토된 유물은 5~6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지름15~19m, 높이 3~4m의 대형분과 지름 10~15m, 높이 2~4m의 중형분, 지름 10m 미만의 소형분이 고루 밀집되었으며, 원형봉토분이 대부분이다.1960년에 국립중앙박물관, 1965년 경희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성토의 모양은 봉구를 중심으로 수평단축 상태로 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봉구를 조성하는 데 사용된 흙은 순수한 점토로서 그 양 또한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용된 흙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는 흙과 색깔이 달라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으로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이 고분군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통치자에 의해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빙계계곡
빙계계곡은 경북 8승의 하나로 1987년 9월 25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빙계계곡은 빙계(氷溪) 3리 서원(書院)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이다. 계곡 안쪽에 자리한 보물 오층 석탑은 높이 8.15m의 대형 탑이며, 화강석으로 조성된 고려 초의 석탑이 있다
의성 조문국사적지
의성은 지리적으로 경주에서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중요 교통로에 위치하여, 당시 신라에서는 이곳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의성에서 현존하는 대규모의 고총에서도 확인된다.
금성산 고분군은 현재 행정 구역 상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로 구분되지만, 하나의 능선에 지속적으로 조성된 대규모 고분군이다. 이는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발굴 전문기관에 의해 총 7회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일대에는 조문국 경덕왕이라 전해지는 고분을 포함해 약 374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의성 사촌마을
경북 의성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마늘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가 ”의성”이라는 이름이다. ”의로운 성”이라 이름 할 만큼 의로운 선비가 많았고, 반촌 마을이 많은 곳이 바로 의성이다. 남부의 반촌이라 불리는 의성 산운마을이 있는가 하면, 북부의 반촌으로 알려진 안동 김씨, 안동 권씨, 풍산 류씨의 집성촌인 ”사촌 마을”이 있는곳이 의성이다.